‘믿는 것이 보는 것이다’


이 중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을 전자책으로 샀고, 읽기 시작한다. 이 책의 부제는 “Resisting the Attention Economy”, ’관심경제에 저항하기’다.


2023-01-09 17:20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 전시

집이 아닌 곳에서 작업을 하면 집중이 더 잘 될까 싶어서 집 근처의 공유오피스에 3일 무료체험 신청을 해서 들러봤다. 예상과 달리 분주하고 어수선했다. 입주에 있는 회사들이 꽤 있는 것 같았다. 깔끔하고 차분한 느낌보다는 혼란스런 회사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을 때의 분위기랄까.

이럴 거면 그냥 집에서 하는 게 낫겠다고 결론 내렸다.

국립고궁박물관 과학문화 전시장에서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 전시를 시작했다는 기사를 봤는데, 근처여서 보고 왔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우표 때문에 처음 알게 되었는데, 계속 관심이 가는 유물이다.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가 제일 크다.

영상을 이용한 전시도 공을 들여놓았다. 4분 남짓의 영상인데, 스크린과 석각본을 활용하여 ’천상열차분야지도’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잘 설명해 놓은 것 같다.

촬영해 온 영상은 뉴스레터에 올렸다.

2023-01-05 01:14

패션에서 ’클래식’의 의미

〈fashionboop〉’은 챙겨보는 블로그 중 하나인데,’넥타이 - 정장 연합체 혐오론’에 공감하며, 오래된 의문이 조금 풀렸다.

넥타이는 오직 장식적 용도 외에 하는 일이 전혀 없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게 대체 왜 여태 남아있을까 싶을 정도로 무의미하다. 혹시나 위급 상황에 밧줄로 쓰거나(실크는 튼튼하다), 괴한을 제압하거나(훈련이 필요할 거다), 혹은 묶거나 연결하는 다른 용도로 쓰일 수가 있긴 하겠지만 이건 넥타이의 용도가 아니라 길이가 긴 천의 용도다. 그럼에도 이 장신구는 위에서 말했듯 비즈니스 웨어 등 의복 문화를 어느정도 지배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넥타이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수트는 지금처럼 생길 이유가 없다. 과연 넥타이는 필요한 건가.

패션의 자유로움과 실용성, 효용성은 4지 선다 형태로 넥타이 무늬를 선택하는 정도를 의미하지 않는다. 넥타이 대신 보타이를 맨 위트 같은 걸 의미하는 게 아니다. 아무 필요 없는 걸 입지 않을 결단을 말하고 특히 세간에서 통용되는 대외적 착장의 질서 속에서 제외시켜 버리고 새로운 착장 질서를 구축할 의지를 말한다. 게다가 우리는 이미 낡은 과거의 유산을 대체할 만한 옷의 장르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

이 주제에 대한 후속 글들이 나올 계획이라고 하니 기대된다.

2022-12-08 20:45

(3일차) 검은 겨울, 누가 이 침대를 쓰고 있었든, 취미와 수집 - 필적筆跡

(詩)
주하림, 《여름 키코》 중 ‘검은 겨울

… 뿌리 없는 식물을 안고 잠을 청하는 남자의 침대, 여행지에서 만난 여자 때문에 남자는 유서를 찢고 한의 인간에서 숙명의 인간으로 건너간다

(단편)
레이먼드 카버, 《누가 이 침대를 쓰고 있었든》 중 ‘누가 이 침대를 쓰고 있었든

이상한 곳이다. 그곳에서, 작고 해로울 것 없는 꿈과 잠에 겨운 새벽의 이야기가 죽음과 소멸에 관한 생각으로 나를 이끌었다.

(에세이)
김구용, 《인연》 중 ‘취미와 수집 - 필적筆跡

한글 글씨는 한문 글자보다도 현대 조형 예술과 서로 통하는 점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글은 선線과 원圓과 굴곡과 속력이 있다. 얼마든지 심상心象 구성이 가능하면서도 우리 고유의 전통미를 발휘할 수 있다고 믿는다. 간혹 한글 서예에 새로운 정신을 부여하려고 시도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필적을 많이 가졌대서 장한 것도 아니요 자랑할 것도 못 된다. 어디까지나 마음의 그림이지 사치품은 아니다. 단 한 폭이라도 좋으니 필적에서 자기가 존경하는 옛 어른을 직접 뵈옵고 앞날의 붓글씨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뜻깊은 일이다.

2022-11-28 23:36 · 레이 브래드버리 챌린지

(2일차) 위장, 1999년 8월 지구인, 가을 산사 - 동학사

레이 브래드버리 챌린지: 2일차

(詩)
김기택, 《낫이라는 칼》 중 ‘위장

… 따분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지만 그는 다급하게 쫓기고 있는 것 같았다. 막다른 길에 몰려서 출구가 있을 만한 작은 빈틈이라도 헛되이 찾고 있는 것 같았다. 그토록 많은 방과 골목과 문을 놔두고 하필이면 숨은 곳이 주름과 검버섯과 흰머리란 말인가. …

(단편)
레이 브래드버리, 《화성연대기》 중 ‘1999년 8월 지구인

“우리는 지구에서 왔단 말입니다!”

(에세이)
김구용, 《인연》 중 ‘가을 산사 - 동학사’ (1978)

내가 어디에 있건 간에 삼존불이 더 이상 선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삼세가 현재요, 영겁이 동시라는 설법을 하신다. 언제나 그 당시처럼 부족한 내가 듣는 것이다.

2022-11-25 23:11 · 레이 브래드버리 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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